토미존 프로필·통산 288승 팔꿈치 인대 수술로 야구를 바꿨지만 명예의 전당에 못 간 이유


 지금은 야구팬이라는 누구나 아는 토미존 수술이지만 1974년 당시 1%의 가능성을 믿고 마운드에 서기 위해서 수술을 선택했던 레전드 토미 존 선수입니다.

수술 이후 1년 간의 재활 끝에 다시 마운드에 선 토미 존은 1979년 276.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96이라는 괴물같은 성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토미존의 활약은 이후 수많은 후배들의 표본이 됐고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은퇴 위기에 몰렸던 투수들이 수술로 다시 한 번 그라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로 회자되지만 통산 288승에도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한 커브의 마술사 토미존을 소개합니다.


토미존 프로필·통산 288승 팔꿈치 인대 수술로 야구를 바꿨지만 명예의 전당에 못 간 이유
토미존 프로필·통산 288승 팔꿈치 인대 수술로 야구를 바꿨지만 명예의 전당에 못 간 이유

커브의 마술사 토미존 투수

1943년 5월 22일 미국 인디애나 주 테레호테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1989년까지 26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통산 288승을 기록한 좌완 투수입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뉴욕 양키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까지 총 6개 구단을 거치면서 애칭은 "더 바이오닉 맨(the Bionic Man)"입니다.

테레호테에서 어린 시절 동네 야구를 즐기다 아버지 친구이자 전 마이너리그 투수였던 알리 앤드류스로부터 커브볼을 배웠는데 이후 통산 288승의 주무기가 되었습니다. 게르스트마이어 고등학교에서 야구와 농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투수로서 고교 통산 28승 2패를 기록했습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해 1961년 수석으로 졸업했고 여러 대학에서 농구 특기생으로 영입을 시도했으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스카우트 조니 슐테의 눈에 들어 야구선수를 선택했고 졸업하자마자 인디언스와 계약해 마이너리그 더뷰크 패커스에 배정되었습니다.

화이트삭스의 에이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마이너리그를 거쳐서 1963년 9월 6일 워싱턴 세너터스전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습니다. 1964년 5월 3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첫 메이저리그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1964시즌 후 3자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하면서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습니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7시즌을 뛰며 에이스로 활약했는데 1966년 개막전 선발을 시작으로 5차례 완봉승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공동 선두에 올랐고 1967년에는 6완봉으로 리그 선두를 지켰습니다. 1968년은 커리어 최고 시즌 중 하나로, 평균자책점 1.98을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던 중에 8월 22일 딕 맥컬리프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어깨 인대가 손상되면서 시즌 잔여 기간을 결장했습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완투와 완봉을 거듭했습니다.

1971년 12월 화이트삭스에서 딕 앨런과 맞트레이드되면서 LA 다저스로 이적했습니다. 다저스 이적 후 1973년과 1974년 내셔널리그 승률 부문 선두를 차지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보였지만 1974년 7월 17일 13승 3패의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있던 중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전에서 투구 도중 팔꿈치 척측측부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프랭크 조브 박사와 토미존 서저리

프랭크 조브 박사와 토미존

프랭크 조브 박사와 토미존 

수술 전까지 124승을 기록하면서 이닝이터로 활약했지만 당시만 해도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면 사실상 투수로서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얼음찜질을 하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서 야구역사를 바꿀 희대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프랭크 조브 박사는 부상부위를 살펴보던중 복구할 척골측부 인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같은 해 9월 25일, 4시간에 걸쳐 토미존의 오른팔 힘줄을 왼쪽 팔꿈치에 이식하는 혁신적인 인대 재건술을 시행했습니다.

프랭크 조브 박사 본인도 성공 확률을 100분의 1로 예상할 정도로 불확실한 수술이었고 재활 방법을 아는 사람도 없었던 최초의 수술이었습니다. 다시 마운드에 서기 위해서 매일같이 운동했고 회복 과정에서 척골 신경 손상으로 손가락 감각을 잃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1975년 6월 손가락 감각이 돌아오면서 7월에는타격 연습과 짧은 거리를 던지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다시 타자들을 상대로 투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한 시즌을 재활에 매진한 끝에 1976년 4월 1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역사적인 복귀전을 치렀습니다. 이 복귀를 계기로 존은 "바이오닉 맨"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포팅 뉴스 선정 내셔널리그 올해의 재기상과 프레드 허치슨 상을 수상했습니다.

1977년에는 34세의 나이로 개인 첫 20승 시즌(20승 7패, 평균자책점 2.78)을 달성했으며,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올랐습니다. 다저스는 이 시즌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해 생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도 밟았습니다.

1978년에도 17승을 거두며 다저스의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했지만 아쉽게도 두 시즌 모두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78년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뉴욕 양키스와 3년 140만 달러에 계약했고 이후 양키스에서 1979년 21승, 1980년 22승(개인 최다)을 연속으로 거두며 명문 구단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80년에는 6완봉으로 13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완봉 부문 선두에 올랐고 사이 영 상 투표 4위에 올랐습니다. 제2의 전성기를 보내던 중에 1981년에는 아들 트래비스가 3층 높이에서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를 겪으며 성적이 떨어지면서 1982년 시즌 도중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에인절스에서는 1982년 팀의 지구 우승에 기여했고, ALCS 1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1983년에는 데뷔 첫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하락세가 시작됐고 1985년 6월 어머니의 암 투병 간병을 위해 팀을 떠나면서 같은 날 에인절스에서 방출되었지만 이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해 시즌을 마쳤습니다.

1986년 계약에 실패하면서 은퇴 위기에 몰렸으나, 양키스 투수진의 부상 공백으로 극적으로 복귀했습니다. 1987년 13승을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고, 1988년 필 니크로가 은퇴하면서 메이저리그 최고령 선수로 1989년 45세의 나이로 개막전 선발을 맡았으며, 4월 27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개인 통산 마지막 288번째 승리를 기록하면서 이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팔꿈치 인대 접합 토미존 수술이란
팔꿈치 인대 접합 토미존 수술이란

토미존 수술과 조브 박사

팔꿈치 인대 부상은 곧 은퇴이던 시절 인대 접합 수술이 성공하면서 전 구단에서 주목했고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이후 '토미 존 수술'로 명명되면서 야구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됐습니다. 이전 같으면 은퇴를 했어야 했던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고 2004년 폴 몰리터, 2015년 존 스몰츠, 2026년 빌리 와그너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습니다. 참고로 한국야구선수 중 토미존 수술 1호는 정민태 투수이고 류현진은 2번이나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 토미존 수술 투수 정민태
한국인 최초 토미존 수술 투수 정민태 

MLB 레전드 토미존 명예의 전당에 못간 이유

통산 288승 231패, 평균자책점 3.34, 2,245탈삼진, 4,710과 1/3이닝을 기록한 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이지만 정작 명예의 전당 입성은 실패했습니다. 특히 다승 부문에서는 로저 클레멘스 (353승), 297승의 보비 매튜스 다음으로 누적 WAR가 61.6에 달하지만 생전에 입성하지 못했습니다.

보비 매튜스는 1880년대 투수이고 로켓맨 클레멘스는 약물 이슈를 생각하면 사실상 명전에 입성하지 못한 최다승 투수입니다. 명예의 전당 투표 당시에도 미국 야구기자단 투표에서 31.7%에 그쳤고 원로위원회에서조차도 구제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입니다.

디지 딘 160승, 샌디 쿠팩스 165승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명예의 전당 투표가 인기 투표의 성격도 띠고 있는데 디지 딘은 30승 시즌, 샌디 쿠팩스는 28승 시즌 등으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고 통산 ERA 3.90으로 명전 투수들 중에서 최악인 잭 모리스는 1991년 미네소타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MVP로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꾸준함의 대명사로 싱커볼 투수로 다승왕, 탈삼진왕, 평균자책점 등 타이틀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고 월드시리즈도 3번이나 진출했지만 모두 패배하면서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1968년~1970년 화이트삭스 시절 3년간 31승에 그치면서 통산 300승도 넘기지 못하면서 300승, 3000탈삼진 등 클래식 스탯도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면서 기자단의 외면을 받은 비운의 투수입니다.

직구 구속은 시속 약 92마일(148km/h) 전후에 불과했고 타자들에게 많은 땅볼을 유도하는 제구력 위주의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수비가 좋지 않아서 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한 번의 인플레이 상황에서 홀로 3개의 실책을 연속으로 저질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88년 7월 27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포구 실책, 송구 실책, 그리고 커트 플레이 과정에서의 송구 실책을 연달아 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토미 존이 남긴 "이걸로 골드 글러브 받기는 다 틀렸구나"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투수들이 걱정없이 공을 던질 수 있는 파이어볼러 시대를 연 주인공이지만 그라운드 내에서는 통산 성적에 비해서는 임팩트가 약했고 이때문에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선수가 됐습니다.

토미존 기록

통산 288승은 메이저리그 역대 26위이며 통산 4,710과 1/3이닝은 메이저리그 역대 20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입니다. 26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면서 놀란 라이언, 캡 앤슨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대 공동 3위에 해당하는 최장수 선수 생활 기록을 남겼습니다.

야구를 바꾼 토미존 수술
야구를 바꾼 토미존 수술

토미 존 통계

  • 1963년 클리블랜드: 0승 2패 평균자책점 2.21 20.1이닝
  • 1964년 클리블랜드: 2승 9패 평균자책점 3.91 94.1이닝
  • 196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4승 7패 평균자책점 3.09 183.2이닝
  • 196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4승 11패 평균자책점 2.62 223이닝
  • 1967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0승 13패 평균자책점 2.47 178.1이닝
  • 196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0승 5패 평균자책점 1.98 177.1이닝
  • 196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9승 11패 평균자책점 3.25 232.1이닝
  • 197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2승 17패 평균자책점 3.27 269.1이닝
  • 1971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3승 16패 평균자책점 3.61 229.1이닝
  • 1972년 LA 다저스: 11승 5패 평균자책점 2.89 186.2이닝
  • 1973년 LA 다저스: 16승 7패 평균자책점 3.10 218이닝
  • 1974년 LA 다저스: 13승 3패 평균자책점 2.59 153이닝 WHIP 1.14
  • 1976년 LA 다저스: 10승 10패 평균자책점 3.09 207이닝 WHIP 1.29
  • 1977년 LA 다저스: 20승 7패 평균자책점 2.78 220.1이닝 WHIP 1.25
  • 1978년 LA 다저스: 17승 10패 평균자책점 3.30 213이닝 WHIP 1.33
  • 1979년 뉴욕 양키스: 21승 9패 평균자책점 2.96 276.1이닝 WHIP 1.21
  • 1980년 뉴욕 양키스: 22승 9패 평균자책점 3.43 265.1이닝 WHIP 1.23
  • 1981년 뉴욕 양키스: 9승 8패 평균자책점 2.63 140.1이닝 WHIP 1.24
  • 1982년 뉴욕 양키스·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69 221.2이닝 WHIP 1.25
  • 1983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1승 13패 평균자책점 4.33 234.2이닝 WHIP 1.43
  • 1984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7승 13패 평균자책점 4.52 181.1이닝 WHIP 1.54
  • 1985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오클랜드 애슬레틱스: 4승 10패 평균자책점 5.53 86.1이닝 WHIP 1.68
  • 1986년 뉴욕 양키스: 5승 3패 평균자책점 2.93 70.2이닝 WHIP 1.25
  • 1987년 뉴욕 양키스: 13승 6패 평균자책점 4.03 187.2이닝 WHIP 1.38
  • 1988년 뉴욕 양키스: 9승 8패 평균자책점 4.49 176.1이닝 WHIP 1.51
  • 1989년 뉴욕 양키스: 2승 7패 평균자책점 5.80 63.2이닝 WHIP 1.71

▶ 통산: 760경기 700선발 288승 231패 평균자책점 3.34 4710.1이닝 완투 162 완봉 46 세이브 4 볼넷 1259 삼진 2245 피안타 4783 자책점 1749 WHIP 1.28

▶ MLB  ◀

토미존 수상 이력

  • 1968년 -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선정
  • 1976년 - 내셔널리그 올해의 재기상 수상
  • 1976년 - 프레드 허치슨 상 수상
  • 1978년 -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정
  • 1979년 -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선정
  • 1980년 -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선정
  • 1981년 - 파이 델타 쎄타 루 게릭 메모리얼 어워드 수상
  • 2018년 - 야구 유물관 영원한 성소 헌액

토미존 별세

방광암 투병 중이던 2026년 8월 17일 결국 향년 83세로 사망했습니다. 사망하기 직전에는 2014년 먼저 세상을 떠난 프랭크 조브 박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1% 가능성에도 다시 마운드에 서기 위해서 토미존 수술을 받았던 레전드로 야구과 계속되는 한 영원히 함께 할 전설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야구 토미존 프로필

  • 영어: Tommy John | 한자: 정보 없음 | 본명: 토마스 에드워드 존 주니어(Thomas Edward John Jr.)
  • 생년월일: 1943년 5월 22일 (사망 당시 83세) - 2026년 8월 15일 별세
  • 고향: 미국 인디애나 주 테레호테 | 국적: 미국
  • 현재 거주지(집): 미국 플로리다 주 레이크우드 랜치(브레이든턴)
  • 키: 190cm | 몸무게: 81kg
  • 학력: 게르스트마이어 고등학교 -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 투타: 좌투우타 / 포지션: 선발 투수
  • 소속팀 이력: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63~1964) - 시카고 화이트삭스(1965~1971)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72~1974, 1976~1978) - 뉴욕 양키스(1979~1982)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82~1985)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85) - 뉴욕 양키스(1986~1989)
  • 데뷔년도: 1963년(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가족: 배우자 샐리 시몬스(1970년 결혼), 재혼 배우자 셰릴 젤딘(2022년 기준) / 자녀 타마라, 토미 3세, 트래비스, 테일러
  • 지도자 경력: 해리스버그 세너터스 투수코치(2002) - 에드먼턴 트래퍼스 투수코치(2003) - 스태튼아일랜드 양키스 투수코치(2004) - 브리지포트 블루피쉬 감독(200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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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깜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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